단전호흡(丹田呼吸)은 단(丹)에서 시작해서 단(丹)으로 끝난다.
신단(神丹)에서 인식하는 것이 신단용어(神丹用語)라면, 단전호흡(丹田呼吸)은 단(丹)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만큼 단(丹)이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단(丹)이란 무엇일까? 알려지기로는 단(丹)은 ‘붉다’라는 뜻과 관련 있는 생명력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어원과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여러 설이 있지만, 아침을 뜻하는 ‘단(旦)’과 읽는 방법과 형상이 비슷하기에 순수 우리말인 ‘해’, 즉 ‘태양(太陽)’이 아침에 밝게 떠오르는 모습이나 저녁에 붉게 지는 모습에서 왔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은 단(丹)을 형성시키는 호흡이다. 초심자는 이 단(丹)을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단(丹)은 생명에너지의 세력으로 생명에너지의 축적이 깊어질수록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이름 붙일 길 없고, 모양도 형태도 없다고 이른바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기도 하며, 음양오행(陰陽五行) 또는 팔괘(八卦)에서 방위상 가운데 위치하여 중(中)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름 멋을 부리며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우주의 모든 것은 애매하고 모호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체험했던 우리들 수련자의 이해도가 부족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조금 무성의하거나 부족했을 뿐이다.
다만, 생명에너지는 실재계(實在界)의 에너지이고, 그것의 그림자인 물질계(物質界)의 단절되고, 나뉘고, 분류하는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점은 있다.
왜냐하면, 만물은 구성하는 재료도 생명에너지이고, 만드는 도구도 생명에너지이고, 만들어지는 것도 생명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 역할이 조금씩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하나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칼로 두부를 자르듯 확연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이다.’ 정도로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러므로 단(丹)은 단전(丹田)에서 만들어지지만, 이 또한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나뉘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하나인 세계를 단(丹)을 매개체로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다.
아무튼, 이론이야 이쯤하고 단(丹)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에 들어가 보자.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으면 하단전에서 기감(氣感)이 느껴진다. 이때 호흡법은 직통호흡으로 자신이 편하게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호흡량으로 호흡한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은 동일하게 보통 3~4초 정도, 그보다 얕아도 상관없고 깊어도 상관없다.
아니, 호흡량은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편안한 호흡이 좋다. 하단전에 힘을 주는 강도는 그냥 소변 보는 정도의 미약한 강도로 하단전이 나왔다 들어갔다 기분 좋게 느껴지면 그만이다.
이 상태에서 더욱 세밀하고 예리하게 집중해서 하단전에서 생명에너지를 고정시킨다는 생각으로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으면, 생명에너지가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느껴지다가 물 같은 액체처럼 바뀌고, 그것에 더욱 힘을 쏟으면 그것이 일종의 알갱이 같은 결정체가 된다.
이것은 약간 시원하거나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참 동안 하단전에서 맴돌거나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원래 이런 것이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을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다시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자마다 차이가 있고, 또한 확연한 감각은 아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그 배경에 숨겨진 원리를 이해하고, 감각적인 응용력을 익혀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생명에너지가 압축되어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하단전을 중심으로 생명에너지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생명에너지의 질감이 바뀌기 때문이다. 생명에너지는 점차 조밀해지며, 이러한 질감의 변화가 하단전에서 느껴지다가 결국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주에서 물질이 서로의 중력에 의해 뭉쳐지고, 별이 형성되거나 거대 질량을 가진 항성이 스스로 붕괴되면서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리면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전통 선도(仙道)에서는 진종자(眞種子)라고 하는데, 이것을 더욱 키워 가면 소약(小藥)이나 대약(大藥)이 된다. 이 과정을 통틀어 채약(採藥)이라고 한다. 채약은 병을 치료하는 그 약(藥)을 말하는 것이다. 소약(小藥)이나 대약(大藥)은 채약(採藥)의 크기로 구분한 것으로 그 크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다만 소약(小藥)은 자잘한 신체적 질병을 고치는 데 그치지만, 대약(大藥)을 얻으면 생로병사에서 비롯되는 괴로움 자체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대약(大藥)이 발생하면 어떠한 괴로움도 느끼지 않으며, 지극히 상쾌하고 평안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평안함은 수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고, 한 번 얻게 되면 수련자 스스로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상태가 매 순간 지속될 수는 없으므로, 그 체험에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법(正法)이 아닌 길은 까다롭고 가려야 할 것이 많으며, 그만큼 분명한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단(丹)과 채약(採藥)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단약(丹藥)’으로도 불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지 이것은 물질적인 약(藥)이 아니라 비물질인 생명에너지인 기(氣)로 이루어진 약(藥)이다.
반드시 위에 소개된 방법뿐 아니라, 어찌 되었든 하단전에 생명에너지의 집중체를 만들면 된다.
다만 이것을 방치해 두면 생명에너지가 정(精)·기(氣)·신(神)의 순으로 원활하게 승화되지 못하고, 정(精)이 물질화되어 몽정 등으로 방출될 수 있다. 이때에는 정(精)·기(氣)·신(神)을 한껏 열어 생명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승화되도록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단전에 탁구공만 한 구체를 상상해도 되고, 야구공만 한 구체를 깨알만 하게 수축하는 방법도 있고, 생명에너지의 연못 등 응용하자면 무궁무진할 것이다. 단번에 대약(大藥)과 같은 모양의 구체를 생각해도 되고, 그대로 성공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운이고 사실은 호흡량과 수련 기간이 어느 정도 더해져야 완성되므로 조바심 내지 말고 생명에너지의 집중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바탕은 항상 조화로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단전(下丹田) 일점(一點)에 의식을 집중해도 그 일점(一點)을 기점으로 생명에너지의 세력이 형성된다.
이처럼 단(丹)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그래야 하단전에 중심이 잡히기 때문이다.
수련이 깊어질수록 하단전의 위치가 직감적으로 감지되어 갈 것이다. 이렇게 하단전에 중심을 잡는 것에 숙달되면, 단순히 하단전 부근에 중심을 잡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