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련이든 체험하는 현상은 개개인마다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본질을 전하려는 말과 글의 태생적 모호함과 더불어 그것을 체험하는 개개인의 개성 때문에 달라진다.
자신의 체험이 크게 봐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맞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 단전호흡(丹田呼吸) 이나 선도서(仙道書) 등에서 마치 자기 말이 아니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왔던 잘못도 있고, 책을 쓴 저자 자신도 양심 없이 부풀려 글을 써낸 탓도 있다. 물론 글로 표현하다 보니 조금 과장 하여 쓸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스스로 직접 검증도 하지 않은 체, ‘아마 이건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마치 진실처럼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스승이 한 말이라면 틀림없는 사실이라 믿으며,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 대는 사람은 지금도 셀 수 없이 많다. 왜냐하면, 자신의 스승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미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사유는 할 수 없는 부류들이다.
이렇게 볼 때, 단(丹)의 모습, 심안(心眼),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 기타 모든 것은 개개인에 따라서 체험은 조금씩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타고나는 개개인의 의식 구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고, 여러 가지 셀 수 없이 많은 변수 때문에 그렇다.
대표적인 이유는 우리가 정도(正道)를 벗어난 생활을 보내면서 그만 마음의 스모그를 만들어내서 본성인 선아(善我) 위에 스모그를 잔뜩 덮어버려 진실이 굴절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실이 보이지 않는 경우, 수련을 통해 현상이 일어날 때 잠재의식에서 그럴싸한 환상(幻像)을 불러다 대체해서 보여주게끔 되어있다.
문제는 환상(幻像)에 불과한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양심에 손을 얹고 자신 스스로 질문을 하다 보면 누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자신도 속이고, 타인도 속이게 되는 경우이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참으로 가여운 것이 인간이긴 한 것 같다.
진실을 진실 그대로 보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지상계에 육체를 지닌 경우, 부처님도 예수님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성자(聖子)들께서도 항상, 반성(反省)을 하신 것이다. 반성은 진실을 드러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노을 현상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노을 현상이 일어날 때 잠을 자는 중이었으며, 이때 불사조가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비쳤다고 말했다. 진실은 의식이 들고 확인해 보니, 시뻘건 기운 덩어리였다.
환상(幻像)일 경우 어딘가 짚이는 점이 있다. 그래서 양심에 항상 손을 얹고 생각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때 필자가 양심이 없었으면 ‘나는 불사조의 가호를 받았다!’라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누군가 투시를 했다’, ‘나는 못했다’, ‘나는 이것을 봤다’, ‘저 사람은 저것을 봤다’ 이런 것으로 수행(修行)의 깊음을 알아보려 한다면 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무상(無常)한 일이다. 그런 잡다한 현상에 호들갑을 떨며 분위기를 흐리는 것보다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수행자의 태도이다.
투시의 경우 대게 아무 의미도 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간혹 미래를 예측하는 투시를 한다 해도, 나중에 가서 전에 일어났던 투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주로 자신에게는 인상 깊은 일이 일어나며, 나라의 운명을 보거나 세상의 움직임을 보는 투시는 굉장히 일어나기 어렵다.
격벽투시 같은 경우도 필요할 때 편리하게 꽤 뚫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게 자신의 의지(意志)와 상관없는 무의지(無意志) 적인 상태에서 이런 투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에 격벽투시가 일어날 때는 그게 투시인 줄도 몰랐다. 나중에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장애물로 시야가 막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배후에 있는 것이 유리판을 통해 보는 것처럼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왜 나의 의지(意志)대로 안되고 무의지(無意志) 적이며, 환상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지, 궁금했던 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위에 다뤘듯이 우리의 맑아야 할 영혼을 스스로 부조화된 스모그로 덮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스모그가 없다면 사실 그대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직 영혼이 맑던 어린 시절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너무 인상 깊은 일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저런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정법(正法)에 의지해 완성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을 닦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현상이란, 때가 되면 나타나 스쳐 지나가는 차창밖에 풍경과도 같은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다한 현상에 휘둘린다면 수련은 이제 여기까지, 정법(正法)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