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良心)’이란 인간에게 부여된 성품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순 있어도 자신에게는 하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神)의 자녀라는 증거다.”라고 다카하시 신지는 말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필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선(善), 악(惡)을 구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름,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은 나쁜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어도, 그 상념(想念)과 행위(行爲)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자아(自我)를 바탕으로 한 잘못된 신념(信念)에 빠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양심(良心)이란 잣대를 신이 부여해주었고, 인간은 이 잣대를 이용해 스스로를 반성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심(良心)이란 곧 신(神)의 성품이었다.
이 사실을 눈앞에 보여주어도, 장님에 불과한 필자는 알아듣질 못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구절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쁜 일이었을지, 필자는 어린아이마냥 뛸 듯이 기뻐했다.
성자(聖子)들의 일생을 살펴보면, 악(惡)을 접하면 그 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보리(菩提)를 취한다. 즉, 고통을 깨달음의 기쁨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경우,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사람을 자신의 제자로 품는다. 같은 입장에 처했을 때, 필자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경찰에게 맡기고, 필자의 인생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사실 조차 불쾌해 했을 것이다.
전자는, 성인(聖人)의 경우일 것이고, 후자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의 경우다.
그릇이 다르다. 물론, 성인들의 흉내를 내겠다고 무리하게 그릇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도 욕심일 것이다.
영혼(靈魂)의 그릇, 우리는 이것을 이번 생에 더욱 키우기 위해 현상계에 내려와 인간으로서의 수행을 쌓는 영적(靈的) 존재이다. 신(神)의 자녀인 것이다.
중도(中道)는 = 양심(良心) 이다. 또한, 팔정도는 = 중도이다.
양심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싸이코패스는 이것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희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神)의 자녀이므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로 조그마한 양심이지만 그들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성이란 지나간 것을 생각해 내고,
잘못하고 있는 바를 찾아보고, 그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지, 잘못의 근본을
제거하고,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생활을 해 가는 것입니다.”
- 다카하시 신지(高橋信次) -
주의 사항이라면 반성을 한다고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면 참된 반성이라고 볼 수 없다.
반성이라는 것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지 자신을 자책하는 시간은 아닌 것이다. 마음을 진흙탕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어두워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반성에 대해 올바른 시야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