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와 실천의 여정

어린 시절, 필자는 영적 시야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나, 어느 순간 그러한 시야가 닫히면서 내면의 고립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영도(靈道)가 열렸던 시기와 영도가 닫힌 시기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 보인다.

이는 마치 밝게 빛나던 저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이 시기에 필자가 겪은 것은 단순히 외부와의 단절이 아니라, 무지와 혼란이 쌓여가는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보였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며, 자라남에 따라 내면은 스모그처럼 흐려진 상태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생애를 이렇게 시작하지만, 곧 영도(靈道)는 자신이 설계한 삶의 여정을 위해 닫히게 된다. 일부 인상 깊은 기억을 제외하면, 대부분 잠재의식으로 가라앉으며 떠올릴 수 없게 된다. 다만, 필자의 경우 유독 이런 경험이 강하게 각인되었을 뿐이다.

반성을 위한 변화는 필자가 단전호흡을 수련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은 그 체험보다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헌책방에서 <마음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견한 후, 필자는 그 책의 표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책의 표지에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라는 식의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그 당시 필자가 늘 생각하던 내용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심행(心行)에서는 ‘우주(宇宙)는 대신체(大神體)’, ‘우주(宇宙)는 대신전(大神殿)’이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있었으며, 이 또한 필자가 평소 호흡을 하면서 되뇌던 구절이라 적잖이 놀라움을 주었다.

처음에는 "나는 반성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으나, 결국 정법(正法)은 한번 듣게 되면 계속해서 마음을 파고들어 온다. 점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윽고 잘못된 생각과 행동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자기 반성의 과정을 통해 내면의 혼란과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반성의 시간 속에서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수용하는 상태가 되었다. 잘못들은 반성을 통해 자기 치유를 이루어가며 점차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내면의 평화가 어느 정도는 찾아오는듯 싶었다.

깊은 꿈속에서는, 자신은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처음에는 꿈속에서 적나라한 욕망을 들어내며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 꿈을 깨고 나서 헛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도 실패했다”라는 반복에서, 어느 순간부터 좋은 행동을 하거나, 나쁜 행동을 하더라도 꿈속에서 바로 사과하는 행동을 보였다.

자신의 수행이 진전되는지 진전이 없는지는 이런식으로 시험이 따라온다. 수호·지도령(守戶·指導靈)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오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는 상대적인 선악(善惡)을 벗어나 절대적인 선(善), 즉 중도(中道)라고 불리는 조화(調和)를 깨닫게 되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보셨다.

상대적인 선악은 나에게 좋으면 선이고, 나에게 나쁘면 악이라고 쉽게 판단하게 된다. 예를 들어,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보면 육식동물이 악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선인 중도의 관점에서 보면, 초식동물만 있으면 초목이 황폐해져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육식동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육식동물은 필수적인 존재가 되며, 이것이 바로 절대 선의 관점에서의 이해이다.

이와 같은 중도(中道)의 깨달음은, 우리가 상대적인 기준을 넘어서 모든 존재와 현상을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모든 존재는 서로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처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가르침은, 우리가 상대적인 선악을 넘어서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은 깨달음에 이르는 중요한 과정이며, 마음의 조화는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영도를 여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과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행자는 먼저 마음의 조화를 이루고 준비된 상태에서 수행을 이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