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가시라 히로치가(園頭広周)

소노가시라 히로치가 선생은 일본 가고시마현 출신의 종교가로, 정법(正法)의 실천과 평화의 가치를 평생에 걸쳐 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1918년 2월 20일, 가고시마현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한복판에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1940년, 중국 전선의 최전방 진지에서 그는 ‘우주와 자신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강렬한 자각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단순한 감정이나 사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이후 1941년 전투 중, 포탄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앉아라”라는 내적 음성을 듣고 깊은 선정(禪定)에 들었고, 그 순간을 통해 ‘두려움과 적대의 의식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신적 조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1945년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고시마 대공습으로 가족 아홉 명을 모두 잃는 비극을 겪는다.

이 절망 속에서 그는 깊은 결심에 이른다.

“이러한 슬픔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 전쟁의 고통을 다음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

이 다짐은 그가 종교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전후에는 생장의 가(生長の家)에 몸담으며 강사와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고, 사회와 종교를 잇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건국기념일’ 제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국적인 연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전한 바 있다.

1970년대 초, 기존 종교 활동에서 물러난 뒤 다카하시 신지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이 만남을 통해 정법과 신리에 대한 확신을 더욱 깊게 굳히게 되었고, 결국 기존 단체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선택한다.

1978년, ‘정법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정법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된다.

이후 약 18년간 전국 각지에서 강연과 연수회를 열며 정법과 신리의 전파에 전력을 다했고, 월간지 「정법」을 창간호부터 마지막 호까지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직접 집필했다. 이는 개인이 감당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지속적인 헌신이었다.

1999년 2월 20일, 선생은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가 남긴 것은 특정 교단이나 조직이 아니라, “전쟁과 증오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서 평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