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음영 진 곳을 바라보면
모래알 같은 작은 입자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호흡을 하든, 안하든
‘호흡을 오래 해서 생긴 현상일까?’
‘혹시, 안구나 뇌에 이상이 생긴 걸까?’
이런저런 의문을 갖던 어느 날
내리는 입자가 점차 굵어지더니
이내 함박눈 같은 눈발이 되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눈 오는 산정에 앉아 호흡하거나
또는 집 앞 정원에서 앉아
고요히 내리는 눈을 맞는 느낌이다.
그것도 한여름에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설국에 앉아
홀로 고요히 눈발을 즐긴다.
가끔, 의도대로 눈발을 하늘을 향해 날리거나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이내 눈앞이 어지럽고, 멀미까지 날 것 같아 그만둔다.
호흡을 들이마신다.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깊게 들이마시다가
그것을 다시 하단전을 불룩 내밀며 밀어 넣는다.
순간 몸체의 중심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더니
마음이 일순, 한 줄기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되었다.
마음이.
마음은 이미, 죄여오는 집착에서
성큼성큼 벗어난 뒤였다.
아무런 동요도 기복도 없다.
홀가분 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이 바람이 되었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은 바람이 되어
겹겹이 쳐있는 집착의
그물을 자유롭게 빠져 지나간다.
그리고
곧 일상으로 돌아온다.
잠시이지만
집착을 버리고 중도를 얻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마음은 모든 질곡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이든
어떤 삶을 살았든
사람이든
아니든
먼지던
벌래든
죽어있건
살았건
그것을 벗어난 세계가 있다.
우리는 가끔
‘이런저런 것을 들어주면 정법을 따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를 알아야 정법을 따르겠다.’
이런 조건을 내건다.
다, 부질없다.
우리는 본래 바람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나, 소원을 이루는 것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몸에 독화살이 박혀 있다면 빼는 게 먼저다.
몸에 독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어떤 독인지 알고 나면 늦는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란다.
그것도 집착이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애초에 불가능하다.
인공지능(AI)도 수많은 실수의 반복으로
실수를 줄여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큼성큼 집착에서 물러나라
그리고 단지, 본래 모습인 바람이 되어 자유를 찾길 바란다.
'모든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명상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