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기(氣)가 쌓인다

홍태수 교수님의 저서 『丹의 秘高』, 즉 ‘단의 비고’는 그간 발표한 저서들을 통해 단전호흡(丹田呼吸)이나 신단(神丹)을 수련했으나 실패한 이들이 지닌 원인을 짚고, 기존에 소개한 단(丹)의 세계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집필된 책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어렵게 느끼며, “깨달음을 얻고자 수련하는데, 이건 오히려 깨닫고 난 뒤 수련하라는 말 아닌가?”라며 볼멘소리를 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단의 비고’에서 홍태수 교수님이 다룬 핵심은, 본질적으로 ‘진리의 실천’과 ‘반성(反省)’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탐구이다. 기존 저서에서도 ‘회계’와 ‘반성’에 대해 깊이 다루셨으며, 본서 또한 직접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된 사유이기에 철학적으로도 매우 깊은 경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반 수행자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이자, 그만큼 홍태수 교수님의 경지가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씀이 자주 담겨 있다.

“진리는 아는 것만으로는 소유되지 않는다. 진리는 그것을 실천할 때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소유된다.” 이 문장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홍태수 교수님이 추구한 사상의 핵심은, 진리의 실천을 통해 ‘탁기(濁氣)’를 제거하고, 우주에 이미 충만한 생명에너지를 장애 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다카하시 신지님의 강연에서도 ‘정법(正法)’, 즉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여 마음의 ‘스모그’를 제거하면,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신(神)의 빛은 전해진다고 언급된다.

단전호흡(丹田呼吸)의 경우, 수련자가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야 생명에너지, 즉 신(神)의 빛을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에너지를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전해주고 나면, 수련자는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그 이유를 모르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단전호흡은 호흡을 통해 우주의 생명에너지를 자신의 하단전(下丹田)에 끌어들인 뒤 융합하여,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로 삼는 수행이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오염되어 있다면, 신의 빛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호흡으로 축적한 저장량은 금세 고갈되기 마련이다.

무한히 주어지는 생명에너지에 비해, 인위적으로 끌어 오는 에너지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비유하자면, 수원(水源)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흘러 들어오는 물과, 화석 에너지를 써 가며 양수기로 힘겹게 끌어올리는 물 사이의 차이와 같다.

신단(神丹)의 경우를 돌아보면, 애초에 순수한 의식(意識)을 바탕으로 수행을 쌓아가야 한다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은 잊은 채 ‘생명에너지 강화를 위해 경락 유통이 필요하다’는 말에만 매몰되어, 하루 종일 무언가를 빙글빙글 돌려 보지만, 기술적 방식만으로는 마음의 스모그가 사라지지 않는 한 희미한 기감 외에는 별다른 발전 없는 상태가 이어지기 쉽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이미 ‘반성’이라는 핵심은 놓친 상태에서, 가슴에 와닿지 않는 문자들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에 필자는, 그 혼란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진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생명에너지를 차근차근 축적해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단전호흡을 권했지만, 이마저도 조금이라도 어려워 보이면 반사적으로 회피하는 이들이 많아 결국 시간 낭비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팔정도’를 실천하고 ‘반성명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마음의 ‘스모그’를 제거하여, 무한히 주어지고 있는 신(神)의 빛, 곧 생명에너지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인 영혼(靈魂)의 진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노력하는 태도 자체는 분명 귀하다. 그러나 아무런 자기반성 없이 기술적 수단만으로 생명에너지를 축적하려는 태도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진정한 목적을 망각한 것이며, 신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생명에너지만 취하려는 옹졸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본래 쉬운 길은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쉬운 길은 그만큼의 작은 열매를, 어려운 길은 그만큼 큰 열매를 안겨준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곧 ‘정법(正法)’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