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단(神丹) 행공을 하지 말아야 할 경우

신단행공(神丹行功)은 장점이 많은 수련법이지만, 수련자에 따라 개인차가 크게 나타나는 생명에너지 축적법이다.

신단은 본래 영적인 비율이 높은 수행 방식이다. 영적인 질이 높은 이라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길을 열어간다. 신과 자신을 가로막는 ‘욕망’을 걷어내고, 신이 보내주는 생명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받는 것이 핵심이다. 욕망이라는 장애가 적은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집중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수련법은 결국 깊은 몰입을 전제로 한다. 집중력을 기르는 방법들은 알게 모르게 수련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를 유도하는 수련체계가 ‘관법(觀法)’이다.

대표적인 관법인 수식관은 숫자를 세며 마음을 모으는 방식이다. 숫자를 순서대로 세기도 하고, 거꾸로 세거나, 홀수로만 세는 등 여러 방식이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경락유통 역시 관법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력이 좋아도, 영적인 질이라는 장벽은 훈련만으로 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타고나는 경우, 이것은 ‘선업(善業)’의 결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차원이 존재한다.

부처나 예수처럼 어떤 존재들은 그 깊이에 자연스럽게 다다른다.

그래서 ‘수련을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칫하면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다. 필자 역시 그런 착각 속에서 오랫동안 진전 없는 신단을 붙잡고 있었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수련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 필자에게 길을 열어주신 분이 청아당님이었다. 단호하지만 자비심 넘치게 단전호흡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셨다. 필자는 하는 수 없이 이후 단전호흡으로 방향을 틀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신단과 단전호흡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가볍게 명상을 하려 앉았다가,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으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 높은 호흡량으로 깊은 몰입에 이른 경험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잘 맞고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신단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만약 아래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단전호흡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1.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해야지.” 이런 마음이 반복된다면, 신단이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련이 스스로 당기지 않는다면, 억지로 앉아 있어도 몰입되지 않고 오히려 절망감만 커진다.

2. 상기(上氣)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

3. 얼굴이 붓는 등,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증상

4.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적 현상들이 나타나는 경우

신단은 빠르게 생명에너지를 체험하게 할 수 있지만, 모든 단계가 쉽고 부드럽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 단전호흡은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며, 몰입하기 훨씬 유리하다.

필자 역시 호흡에 집중하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이미 1시간,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던 경험이 많다. 그리고 수련이 깊어져 3차행공 이상에 이르면, ‘오늘은 쉬자’는 마음 자체가 일지 않는다.

오히려 수련을 못하게 되는 날이면 마음이 허전하고, 마치 중요한 어떤 삶의 본질을 놓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시점에 이르면, 내가 신선인지, 신선이 나인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호흡하는 순간에 ‘도(道)’가 있고, 삶이 있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고, 자기에게 맞는 수련법으로 깊어지는 것이야말로 참된 수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