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너지와 인간의 의식(意識)은 본질적으로 같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인식하고 진취적인 팀구를 하는 것은, 곧 질 좋은 생명에너지를 작용시키며 이는 고차원의 생명에너지로 도약하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단전호흡(丹田呼吸)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 수련법이다. 그러니 단순히 호흡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을 깊이있게 체득할 수 없다. 단전호흡은 반드시 원리를 이해하고, 본질을 파악하려는 자세 속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단전호흡 수련은 종종 경험에만 의존하여 전수되어 왔다. 특히, 특정 동작과 호흡을 병행하는 형식이 반복되었으며, 그 동작의 의미나 원리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전수가 일반적이었다.
이런 동작은 흔히 ‘행공(行功)’이라 불리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흡에 방해가 될 뿐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세월이 흐르며 이런 동작의 원리조차 본래의 의미를 잃고 형해화(形骸化)되어, 지금은 수련의 본질과 멀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행공(行功)’이라는 용어를 단순한 물리적 동작이 아니라, 실천적 사고와 내면적 수련을 통해 공을 쌓는 행위로 정의한다. 즉, 행공은 외형적 움직임보다 내면의 작용과 실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부 수련자들은 난해한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지만, 이는 실천과 체험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마치 요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론만으로 요리를 논하는 것과 같다. 실천 없는 이론은 수련의 본질을 왜곡하고, 학문적 호기심으로만 접근하면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진리를 설법 중에, 알 수 없고 형식적인 동작을 반복했다면, 그것은 보는 사람은 기괴함을 느꼈을 것이며, 진정한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들은 형식적인 집착에서 오는 덧없음을 알았고 그것에서 벗어나, 깊은 반성과 사고를 통해 진리를 실천했다.
우주를 창조한 신(神)은 의식과 생명에너지의 본질이며, 인간에게도 이 생명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생명에너지는 인간의 의식과 상념에 따라 작용한다. 따라서 단전호흡 중에도 올바른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수련한다면, 저차원의 생명에너지만 축적된다.
이는 마치 돼지가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섭취하듯, 무의지(無意志)적 행동은 본능이며, 생명에너지의 질도 낮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깊은 진리를 추구하고 원리를 이해하며 수련에 임하면, 고차원의 생명에너지가 축적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같은 수련이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다.
성현들은 날마다 자기를 반성하고, 진리를 실천했으며, 고결한 사고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생명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적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는 경지이다.
돼지도 밥을 먹으면 살이 찌듯이, 무의지적 사고(思考)를 가지고 단전호흡을 해도 단순히 정력을 강화하거나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는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더 높은 경지를 향하고자 하는 경우 사고는 곧 생명에너지에 투영되므로, 원리를 이해한 상태에서, 밝고 긍정적인 생각이 수련의 질을 결정짓는다.
심지어 단전호흡이라는 형식적 수련을 따르지 않더라도, 예수님과 같은 성현들처럼 깊고 올바른 사고를 지속하면 생명에너지 상태는 자연스럽게 고차원적의 생명에너지와 연결된다. 이는 서양에 단전호흡이 전파되지 않았음에도 성자의 삶이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단전호흡 수련자는 원리를 이해하고 본질에 집중해야 하며, 형식적인 부분이나 복잡한 동작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배우게 될 정(精)·기(氣)·신(神), 인체전자석의 원리, 경락유통 등의 과정은 모두 사고와 생명에너지를 연결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사고와 함께 원리를 바탕으로 수행을 이어 간다면 결코 좌초되지 않으며, 밝고 질 좋은 생각을 유지하며 꾸준히 수련한다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